
1010년(현종 1년), 고려는 거란(요나라)의 2차 침입을 맞아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거란의 대군이 개경을 함락하자, 고려의 왕 **현종(顯宗)**은 수도를 지키는 대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게 된다. 이 사건은 고려 왕실이 직접 전란을 피해 이동한 중요한 사례로, 단순한 왕의 도피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과 왕권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었다. 현종의 나주 피난은 당시 고려의 정치적 혼란과 군사적 열세를 보여주는 동시에, 거란의 침입에 대한 고려 조정의 대응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이 피난이 단순한 후퇴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피난 과정에서 고려 조정은 내부 결속을 다지고, 이후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현종의 즉위와 정치적 상황, 거란의 침입..

1018년(현종 9년), 고려와 거란(요나라) 사이에 마지막이자 가장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993년과 1010년에 있었던 1차, 2차 침입에도 불구하고 거란은 고려를 완전히 복속시키는 데 실패했다. 이에 거란은 다시 한 번 대규모 원정을 감행하였으며, 이 전쟁이 바로 거란의 3차 침입이다. 그러나 고려에는 뛰어난 명장이 있었다. 바로 강감찬(姜邯贊)이다. 그는 지휘관으로서 철저한 전략과 방어전술을 펼치며 거란군을 압박했고, 결국 귀주 대첩(龜州大捷)에서 고려군의 대승리를 이끌어냈다. 이 승리는 고려가 거란의 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고려와 거란의 외교 관계도 변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거란 3차 침입의 배경과 전개 과정, 그리고 귀주 대첩이 가지는 의미를 ..

고려와 거란 사이의 갈등은 동아시아 국제 정세 속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특히 993년(성종 12년), 거란의 1차 침입은 고려의 외교적 능력을 시험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이 사건에서 고려는 무력보다는 외교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며 국경을 확장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거란은 송나라를 압박하기 위해 고려를 길목으로 삼고자 했으며, 고려는 이에 대해 정교한 외교 전략을 펼쳐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중심에 선 인물은 바로 서희(徐熙)였다. 그는 소손녕(蕭遜寧)이 이끄는 거란 사신과 담판을 벌이며, 고려의 외교적 승리를 이끌어냈다. 서희의 외교 협상은 단순한 협상이 아니라 고려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대화였으며, 결과적으로 강동 6주를 확보하는 역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거란의 침입 배경부터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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