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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발해+후삼국 스토리

정안국, 발해 유민들의 재건국과 요나라 견제

전문가팀 2025. 3. 2.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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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년 발해가 요나라(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한 후, 발해 유민들은 요나라의 지배를 거부하고 곳곳에서 저항했다. 그중 일부는 고려로 망명했으며, 일부는 요나라의 통치를 받아들였지만, 또 다른 세력은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발해 유민 국가가 바로 정안국(定安國, 10세기 후반~11세기 초)이다. 정안국은 발해의 후계국으로서 요나라에 맞서 독립을 유지했으며, 고려와도 외교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요나라의 강력한 군사력과 외교적 압박 속에서 결국 멸망하고 만다.

 

이번 글에서는 ① 발해 유민들이 세운 재건국 정안국, ② 요나라 견제를 위한 군사적·외교적 전략, ③ 고려와의 외교 관계 및 정안국의 몰락을 중심으로 정안국의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겠다.

 


발해 유민들이 세운 재건국, 정안국

1. 정안국의 건국 배경

926년 발해 멸망 이후, 일부 발해 유민들은 요나라에 동화되었지만, 다른 세력은 독립을 추구하며 요나라의 지배를 거부했다.

특히 발해 유민들은 요나라의 강압적인 통치와 강제 이주 정책에 반발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0세기 후반, 발해 유민 세력이 연합하여 만주의 동북 지역(현재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부)에서 독립 국가를 세운 것이 정안국이다.

2. 정안국의 위치와 지배 세력

정안국은 현재의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지도자는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발해 귀족 출신 인물이 왕으로 즉위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안국은 발해의 행정·군사 체제를 일부 계승하였으며, 주변 부족 세력과 연합하여 세력을 키웠다.


요나라 견제를 위한 군사적·외교적 전략

1. 요나라에 대한 저항

정안국은 발해 멸망 이후 요나라가 동북아시아를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요나라를 견제하는 전략을 펼쳤다.

요나라의 영향력이 직접 미치지 않는 만주의 동북부와 연해주 지역에서 발해 유민과 말갈족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을 유지했다.

또한, 요나라의 지배를 피한 고려, 여진족(훗날 금나라의 전신)과도 연대 가능성을 모색했다.

2. 주변 세력과의 관계

정안국은 생존을 위해 주변 부족들과의 동맹을 강화했다.

발해 멸망 후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 거주하던 말갈(靺鞨) 및 여진(女眞) 세력과 협력하여 군사력을 키웠다.

이러한 연합 전략은 초반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요나라가 점점 만주 지역을 장악하면서 점차 약화되었다.


고려와의 외교 관계

1. 고려와 정안국의 관계

고려(918년 건국)는 발해 멸망 이후 발해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발해 계승국"임을 강조했다.

정안국 또한 고려와 외교적 관계를 맺으며 요나라를 견제하려 했다.

정안국과 고려는 모두 요나라의 확장을 견제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협력 가능성이 있었다.

2. 고려와 정안국의 외교 협력 가능성

정안국은 고려와의 외교 관계를 통해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받으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 또한 요나라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정안국과 간접적인 협력을 고려했을 수 있다.

하지만 고려는 당시 송나라와도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요나라와 직접적인 전쟁을 벌이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정안국의 몰락과 역사적 의미

1. 요나라의 정안국 침공

요나라는 발해 계승 세력인 정안국을 용납할 수 없었고, 11세기 초 정안국을 공격했다.

요나라의 강력한 기병과 조직적인 군사력에 맞서 정안국은 저항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멸망했다.

2. 정안국 유민들의 행방

정안국이 멸망한 후, 많은 발해 유민들은 고려로 망명하여 고려 사회에 동화되었다.

일부 유민들은 요나라에 흡수되거나, 여진족과 연합하여 후일 금나라(金, 1115~1234) 건국에 영향을 미쳤다.

정안국의 존재는 발해 유민들이 끝까지 독립을 유지하려 했던 노력의 증거이며, 이후 고려가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면서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역사적 계승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

정안국은 발해 멸망 이후 발해 유민들이 세운 대표적인 후계국으로, 요나라의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려 했던 국가였다.

요나라의 만주 장악을 저지하며 군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강력한 요나라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결국 멸망했다.

정안국은 고려와 외교적 관계를 맺으며 요나라 견제를 시도했으나,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혼자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후 많은 정안국 유민들은 고려로 망명하여 고려 사회에 정착하였으며, 이는 고려가 발해 계승국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정안국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지만, 발해 멸망 이후에도 유민들이 끝까지 독립을 위해 저항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https://ekqwlckdrh.tistory.com/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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