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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渤海)의 제3대 왕 문왕(文王, 재위 737~793)은 무왕(武王)의 강경한 대외 정책을 수정하고,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문왕은 즉위 후 친(親)당 외교 정책을 펼치며 당나라와 적극적으로 교류하였으며, 이를 통해 발해는 불교 문화를 받아들이고, 당나라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문왕 시기의 발해는 외교적 안정과 문화적 발전을 이루며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번 글에서는 ① 당나라와의 외교 교류 강화, ② 불교 문화 수용과 발전, ③ 당나라 문물 도입과 제도 정비를 중심으로 문왕의 친당 외교 정책과 그 결과를 분석해 보겠다.
당나라와의 외교 교류 강화
1. 무왕 시기의 대립에서 문왕 시기의 화해
무왕(武王, 재위 719~737)은 당나라와 군사적으로 대립하며 당나라 견제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무왕이 사망한 후, 문왕은 당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며 외교적으로 친선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2. 문왕의 친당 외교 정책
문왕은 즉위 후 당나라에 사신을 여러 차례 파견하며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당나라 또한 발해를 견제보다는 외교적 동반자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762년, 당나라는 문왕에게 "발해국왕(渤海國王)"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여 공식적으로 독립 국가로 인정했다.
3. 당나라와의 교류 확대
발해는 당나라와 외교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당나라의 관료제와 문화를 수용했다.
당나라로 유학생과 승려를 보내 선진 학문과 문화를 배우게 했으며, 이를 통해 발해 내부의 행정 체제와 학문이 발전했다.
이러한 외교적 교류는 발해가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서 중요한 국가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 문화 수용과 발전
1. 불교의 국가적 보호
문왕은 불교를 국가적으로 장려하며, 불교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힘썼다.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불교 사상과 사찰 건축 양식이 발해로 전파되었다.
특히, 불교를 통해 왕권을 신성화하는 이념을 강화하며 중앙집권 체제를 더욱 확립했다.
2. 불교 사원의 건립
문왕 시기에 발해에는 대규모 불교 사찰이 건립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상경성(上京城)의 불교 유적과 석불(石佛) 조각상 등이 있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성은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의 도시 구조를 본떠 건설되었으며, 그 중심에는 불교 사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3. 불경 번역과 승려 교류
발해는 당나라에서 불경을 가져와 한문 불경을 학습하고 자체적으로 번역했다.
또한, 발해의 승려들은 당나라에서 불교 교육을 받고 돌아와 발해 불교 발전에 기여했다.
이를 통해 발해는 당나라뿐만 아니라 신라·일본과도 불교를 매개로 외교적 관계를 형성했다.
당나라 문물 도입과 제도 정비
1. 당나라 관료제 도입
문왕은 당나라의 3성 6부제(三省六部制)를 기반으로 발해의 행정 체제를 개편했다.
정당성(政堂省, 당나라의 중서성 역할)과 6부(이부, 병부, 호부, 예부, 형부, 공부)를 정비하여 국가 운영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2. 율령 체계 확립
문왕 시기에는 당나라의 율령(律令) 체계를 바탕으로 법률과 행정 제도를 정비했다.
발해의 법률은 당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였지만, 고구려와 말갈의 전통적인 요소도 일부 포함되었다.
3. 도시 건설과 수도 정비
문왕은 발해의 수도를 동모산(東牟山)에서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로 천도(755년경)하며 국가의 중심을 강화했다.
상경성은 당나라 장안성을 모델로 설계되었으며, 도시 구조와 행정 중심지는 당나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4. 당나라식 교육 제도 도입
문왕 시기에는 유교적 학문을 장려하고 과거제(科擧制)와 같은 관리 등용 제도를 도입하여 문관 체계를 정비했다.
발해의 귀족 자제들은 당나라에 유학을 보내 선진 학문과 사상을 익히도록 했다.
5. 대외 무역과 경제 발전
문왕은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이루었다.
당나라와의 무역을 통해 비단, 도자기, 서적 등 다양한 문물이 발해로 유입되었으며, 발해의 농산물과 특산품도 당나라로 수출되었다.
결론
문왕의 친당 외교 정책은 발해가 국제적으로 안정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문화적·행정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나라와 외교 관계를 개선하며 발해가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자리 잡는 발판을 마련했다.
불교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장려하여 국왕 중심의 통치 이념을 강화했다.
당나라의 선진 문물을 도입하여 행정 제도를 개혁하고 국가 체계를 정비했다.
문왕의 정책 덕분에 발해는 "해동성국(海東盛國)", 즉 동아시아에서 번영하는 국가로 불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의 친당 외교 정책은 발해의 문화적 융성, 행정 체계 발전, 국제적 위상 강화로 이어지며, 이후 발해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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