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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渤海)의 제2대 왕 무왕(武王, 재위 719~737)은 발해의 국력을 크게 성장시키고,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펼친 군주였다. 그는 즉위 이후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북방의 흑수말갈(黑水靺鞨)을 정벌하고, 서쪽으로 요동 지역으로 진출하며 당나라를 견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무왕의 북방 정벌과 대외 확장 정책은 발해가 동아시아에서 강대국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① 흑수말갈 공격과 북방 지배, ② 요동 지역으로의 확장과 군사 활동, ③ 당나라 견제와 외교·군사적 대립을 중심으로 발해 무왕의 북방 정벌과 그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겠다.
흑수말갈 공격과 북방 지배
1. 흑수말갈의 위치와 특징
흑수말갈은 아무르강(黑龙江) 유역에 거주하던 강력한 말갈계 부족이었다.
다른 말갈 부족들과 달리 발해의 지배를 거부하며 독자적인 세력 유지를 시도했다.
당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고 발해를 견제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2. 무왕의 흑수말갈 정벌
무왕은 즉위 후 발해 북방의 안정과 국경 확장을 위해 흑수말갈을 정벌할 필요성을 느꼈다.
727년, 발해군이 대대적인 원정을 감행하여 흑수말갈을 공격했다.
흑수말갈은 거세게 저항했으나, 발해군의 강한 군사력에 의해 패배했다.
3. 정복 후 통치 방식
흑수말갈 정복 이후, 발해는 이 지역을 행정 구역으로 편입하고 지방관을 파견했다.
흑수말갈 부족 일부는 발해의 군사 조직에 편입되어 기병(騎兵) 전력으로 활용되었다.
이로 인해 발해의 북방 국경은 더욱 확장되었고, 흑수말갈과 당나라 간의 외교적 연결을 차단할 수 있었다.
4. 당나라와의 외교적 갈등 심화
무왕의 흑수말갈 정벌은 당나라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나라는 흑수말갈을 발해의 대항 세력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발해의 공격으로 흑수말갈이 약화되면서 당나라의 전략은 실패했다.
요동 지역으로의 확장과 군사 활동
1. 요동 지역의 중요성
요동(遼東) 지역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당나라가 장악하고 있었던 지역이다.
무왕은 고구려의 후계국으로서 요동 지역을 되찾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요동은 중국과 한반도로 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므로, 발해의 세력 확장에 필수적인 지역이었다.
2. 무왕의 요동 진출 전략
732년, 발해군은 요동 지역으로 군사 활동을 확대하며 당나라의 변방 수비대를 공격했다.
발해군은 당나라의 군사 거점들을 습격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이러한 공격은 발해가 단순한 방어적 국가가 아니라, 적극적인 군사 확장 정책을 추진하는 강국이었음을 보여준다.
3. 당나라의 대응과 갈등 심화
당나라는 발해의 요동 지역 확장에 대해 강한 경계를 보였으며, 군사를 파견하여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발해군의 기동력과 공격력이 강해, 당나라는 즉각적인 반격을 하지 못했다.
당나라 견제와 외교·군사적 대립
1. 발해의 당나라 공격
732년, 무왕은 발해 수군을 이끌고 산둥(山東) 반도의 등주(登州)를 공격했다.
이 공격은 발해가 육로뿐만 아니라 해로를 이용해 당나라를 견제할 능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당나라의 동쪽 연안이 공격당하면서 발해의 해상 군사력이 강대함을 증명했다.
2. 당나라의 신라와의 연합 시도
발해의 군사적 공격이 계속되자, 당나라는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 733년 신라와 연합하여 발해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신라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발해는 당나라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했다.
이후 당나라는 발해와 직접적인 전쟁을 피하면서, 흑수말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발해를 견제하려 했다.
3. 외교적 긴장과 발해의 독립성 강화
무왕의 대외 정책으로 인해 발해는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입장을 더욱 확고히 했다.
무왕은 일본과 외교 관계를 강화하여 반(反)당 연합을 구축하려 했다.
일본은 발해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당나라와 신라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는 외교 전략을 추진했다.
결론
무왕의 북방 정벌과 군사 확장 정책은 발해를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흑수말갈을 정벌하여 북방 국경을 확장하고, 당나라의 견제를 약화시켰다.
요동 지역으로 진출하며 고구려 계승 국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당나라를 직접 공격하며 군사적으로 대등한 위치를 차지했고, 일본과 외교적으로 협력하여 국제적 입지를 강화했다.
이러한 무왕의 정복 정책은 이후 발해가 문왕(文王) 시기에 강대국으로 자리 잡는 기반이 되었으며, 발해가 독립적 국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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