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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발해+후삼국 스토리

발해와 돌궐의 관계 및 서방 진출 전략

전문가팀 2025. 3. 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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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698년 대조영(大祚榮)이 건국한 이후 주변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으며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특히 돌궐(突厥)과의 관계는 발해의 외교·군사 전략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돌궐은 6세기부터 몽골 초원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강력한 유목 제국을 형성한 세력으로, 발해와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외교적, 군사적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발해와 돌궐의 관계는 단순한 동맹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① 돌궐과의 동맹, ② 발해의 서방 진출, ③ 군사 협력과 외교 관계 등을 통해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돌궐과의 동맹

돌궐은 중국 북방과 중앙아시아를 지배한 강력한 유목 제국으로, 발해와의 관계는 돌궐의 세력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1. 돌궐과의 초기 외교 관계

발해 건국 당시, 돌궐은 제2돌궐(Second Turkic Khaganate, 682~744) 시기로, 당나라와 대립하는 관계였다.

발해 역시 당나라의 견제를 받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돌궐과 자연스럽게 반(反)당 동맹을 맺게 되었다.

돌궐은 발해를 지원하며 당나라의 북방 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2. 돌궐과 발해의 상호 이익

돌궐은 발해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과 경제적·군사적 협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발해는 돌궐의 지원을 받아 당나라의 압박을 줄이고, 서방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얻었다.

3. 무왕(武王) 시기의 적극적 동맹 관계

발해의 무왕(재위 719~737)은 돌궐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당나라를 견제했다.

727년, 발해는 돌궐과 함께 요서 지역을 공격하며 반당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이러한 협력 관계는 발해가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발해의 서방 진출

발해는 돌궐과의 동맹을 통해 서방으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

1. 발해의 서방 외교 전략

발해는 돌궐과 협력하여 중앙아시아 및 서역(西域)과의 교류를 확대하고자 했다.

돌궐이 서방과의 교역을 독점하는 대신, 발해는 돌궐을 통해 서역과 간접적인 무역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2. 실크로드와 국제 교역

돌궐은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발해는 돌궐을 통해 서방과의 무역을 활성화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발해는 비단, 도자기, 서역의 향신료 및 귀금속 등을 교역하며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3. 발해의 군사적 확장 가능성

발해는 돌궐과 협력하여 서방으로의 군사적 확장을 모색했으나, 본격적인 정복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발해는 북방 유목 세력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간접적으로 서방과 연결되는 전략을 취했다.


군사 협력과 외교 관계

발해와 돌궐은 당나라와의 군사적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호 협력을 강화했다.

1. 발해-돌궐 연합군

727년, 발해와 돌궐은 요서 지역을 공격하며 당나라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이는 발해가 독자적인 군사력을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며, 돌궐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강한 군사적 존재감을 드러낸 사례였다.

2. 돌궐의 군사적 지원

돌궐은 발해가 당나라와 전쟁을 벌일 때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발해는 이를 이용하여 국경 방어를 강화하고, 북방 말갈(靺鞨) 세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3. 돌궐의 쇠퇴와 발해의 독립적 성장

744년 돌궐이 멸망하고 위구르(回鶻, 744~840)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발해와 돌궐의 관계는 종결되었다.

이후 발해는 위구르와도 외교 관계를 맺으며 서방과의 연결을 유지했다.


결론

발해와 돌궐의 관계는 반(反)당 동맹을 중심으로 한 군사적·외교적 협력이 핵심이었다.

발해는 돌궐과 동맹을 맺고 당나라를 견제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돌궐을 통해 서방으로의 무역과 외교 관계를 확대하면서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러나 돌궐이 멸망한 후, 발해는 새로운 강자인 위구르와 관계를 맺으며 독자적인 외교 전략을 지속했다.

발해와 돌궐의 관계는 단순한 군사 동맹을 넘어 국제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의미하며, 발해의 강대국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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