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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발해+후삼국 스토리

상경 용천부 – 발해 중흥기의 수도와 동아시아 중심 도시

전문가팀 2025. 3. 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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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 용천부(上京龍泉府)는 발해 중흥기(8~9세기)에 수도로 사용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발해는 건국 초기 동모산(東牟山)을 수도로 삼았으나, 국가가 안정되고 영토가 확장되면서 행정 체계를 정비하고 대외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수도를 상경 용천부로 이전하였다.

상경 용천부는 당나라 장안성을 모방한 계획도시로 건설되었으며, 궁궐과 불교 사찰이 조성된 대규모 도시였다. 이를 통해 발해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하였고, 이후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만큼 번영하였다.

 

이 글에서는 상경 용천부의 건설 배경, 당나라 장안성과의 비교, 행정 중심 도시로서의 역할, 궁궐과 불교 사찰의 문화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 상경 용천부 건설 배경

1) 수도 이전의 필요성

발해는 초기에 동모산을 수도로 사용하였지만, 동모산은 방어에는 유리하지만 정치·경제 중심지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발해가 당나라·신라·일본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중앙집권적 통치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더 넓고 정비된 수도가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8세기 초 문왕(文王, 대흠무) 시기에 수도를 상경 용천부로 이전하였다.

2) 상경 용천부의 위치

현재 중국 흑룡강성 영안(寧安) 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송화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 지대에 위치하였다.

주변에는 농경과 목축이 가능한 넓은 평야가 있어, 대규모 인구를 수용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육로와 해상 교통의 중심지로, 국제 교역과 외교 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2. 당나라 장안성과의 비교 – 계획적인 대규모 도시

1) 당나라 장안성을 모방한 도시 설계

상경 용천부는 당나라 수도 장안성을 본떠 건설된 계획도시였다.

발해는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당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행정·문화·도시 구조를 발전시켰다.

장안성과 유사한 대칭적인 도로망과 도시 배치 구조를 채택하여, 발해가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2) 상경 용천부와 장안성 비교  

구분 상경 용천부 당나라 장안성
도시 구조 직선적이고 대칭적인 도로망 격자형 도로망
궁궐 위치 중앙 북쪽(당나라 황성 배치와 유사) 도성 북쪽에 황궁 배치
행정 구역 5경 15부 62주 체계 수도와 지방 행정 구역(도·현) 운영
문화적 특징 불교 중심 문화, 고구려 영향 유교와 불교 혼합 문화

3) 도시 구성 요소

궁궐(상경성): 왕궁과 중앙 정부 기관이 위치한 행정 중심지.

불교 사찰: 국가 종교로서 불교를 장려하며, 대형 사찰을 건립.

관청·시장·주거지: 행정 관청과 상업 지구를 분리하여 체계적으로 배치.

 

상경 용천부는 당나라 장안성과 유사한 구조를 바탕으로 발전하였으며, 발해가 국제적으로 선진 문명을 수용하고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3. 중심 행정 도시로서의 역할

1) 발해의 정치·행정 중심

발해는 상경 용천부를 수도로 삼으면서, 당나라의 3성 6부제를 모방하여 중앙 행정 체계를 강화하였다.

왕권 강화와 지방 통치를 체계화하기 위해,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구축하였다.

2) 5경 15부 62주 행정 체제

발해는 수도인 상경 용천부를 중심으로 5경(五京) 체계를 운영하였다.

5경 체제

  • 상경 용천부 – 수도이자 국가 정치·행정의 중심
  • 중경 현덕부 – 국가의 중부 행정 중심지
  • 서경 압록부 – 요동 지역 관할
  • 동경 용원부 – 연해주 지역 중심
  • 남경 남해부 – 신라 및 한반도 교류 담당

지방은 15부(府)와 62주(州)로 세분화하여 관리,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행정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체계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운영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지방 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4. 궁궐과 불교 사찰 – 문화·종교 중심지

1) 궁궐 – 발해 왕실과 정치의 중심

상경 용천부에는 대규모 궁궐이 건설되어, 발해 국왕이 정치·행정을 수행하였다.

궁궐은 당나라 장안성의 황궁을 본떠 설계되었으며, 왕권을 상징하는 중심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2) 불교 사찰과 발해 불교의 발전

발해는 불교를 국교처럼 장려하였으며, 상경 용천부에는 대규모 불교 사찰이 건립되었다.

대표적인 불교 유적:

  • 상경 용천부 불교 사찰 터 – 대형 목탑과 불상, 사찰 유적이 발견됨.
  • 불교 석등·탑 – 발해의 불교 미술과 건축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

불교 사찰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학문·예술·외교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발해 문화의 발전을 이끌었다.

3) 불교와 왕권 강화

문왕과 선왕 시기에는 불교를 왕권 정당화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왕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자처하며, 불교적 이상 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결론

상경 용천부는 발해의 수도로서 정치·행정·문화·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며, 발해가 동아시아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당나라 장안성을 본떠 설계된 계획도시로, 발해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 중앙집권 체제의 핵심으로, 5경 15부 62주 행정 체제를 운영. 궁궐과 불교 사찰을 중심으로 문화·종교 발전을 이루며, 발해 특유의 불교 문화를 형성. 상경 용천부는 발해의 국제적 영향력과 국가 체제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도로, 이후 발해가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정도로 번영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https://ekqwlckdrh.tistory.com/839

 

동모산 – 발해 초기 수도의 전략적 중요성

동모산(東牟山)은 698년 대조영(大祚榮)이 발해를 건국한 후, 초기 수도로 삼은 전략적 요충지이다. 발해는 고구려 멸망 이후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성장한 국가였기 때문에, 수도 선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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