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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발해+후삼국 스토리

대인수(선왕) – 발해의 전성기와 ‘해동성국(海東盛國)’의 완성

전문가팀 2025. 3. 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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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수 발해 선왕 (大仁秀, 재위 818~830년)는 발해의 제9대 왕으로, 선왕(宣王)이라는 칭호로 불리며 발해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적극적인 정복 활동과 정치·행정 개혁을 통해 발해를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성장시켰으며, 사서에서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번영을 이루었다. 선왕의 치세 동안 발해는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며 동북아시아에서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글에서는 발해의 최대 영토 확장, 5경 15부 62주의 행정 체제, ‘해동성국’이라 불린 배경을 분석하여, 대인수(선왕)의 업적을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최대 영토 확장 – 동북아시아 최대 국가로 성장

1. 발해 영토 확장의 배경

발해는 건국 이후 꾸준히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선왕 시기에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이전까지 발해는 당나라와의 외교적 관계를 중시하며 국경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펼쳤으나, 선왕은 군사력을 활용하여 적극적인 정복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흑수말갈(黑水靺鞨) 정복과 서북 방면으로의 확장이 두드러졌다.

2. 흑수말갈 정복과 동북 방면 확장

선왕은 북방의 흑수말갈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발해의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이전까지 흑수말갈은 당나라와 독자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발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선왕은 군대를 파견하여 이들을 정복하고 발해의 지방 행정 체제에 편입시켰다.

이를 통해 발해는 동쪽으로 연해주(현재 러시아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3. 서방 확장 – 거란과의 경쟁

선왕은 서쪽으로 요동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며, 거란과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였다.

발해는 이 시기 요동 반도를 장악하며, 한반도 북부 지역과의 연결을 강화하였다.

거란은 발해의 강력한 군사력에 밀려 요서 지역(현재 중국 동북 지방)으로 세력을 이동하게 되었다.

4. 남방 교류 확대

발해는 신라와의 관계도 적극적으로 강화하였다.

신라와의 해상·육상 무역로를 확장하여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으며, 외교적으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5. 발해의 최대 영토 – 동북아시아 강국으로 도약

선왕 시기 발해의 영토는 한반도 북부, 만주 전체, 연해주, 요동 지역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당나라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국가로 평가받을 만큼 성장한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선왕은 발해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며, 발해를 군사·경제적으로 강력한 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만들었다.


5경 15부 62주 – 강력한 중앙집권 행정 체제 구축

1. 지방 통치 체계 정비

선왕은 영토 확장과 함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지방 행정 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였다.

이를 통해 발해는 광대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행정력을 갖추게 되었다.

2. 5경(五京) – 행정·군사 중심지

발해는 중앙집권 강화를 위해 주요 지역에 5개의 ‘경(京)’을 배치하였다.

5경 체제는 중앙 정부의 영향력을 지방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하였다.

5경의 구성

상경 용천부(上京龍泉府) – 수도, 발해의 정치·문화 중심

중경 현덕부(中京顯德府) – 중부 지역 중심지

서경 압록부(西京鴨綠府) – 요동 지역 관리

동경 용원부(東京龍原府) – 연해주 지역 중심

남경 남해부(南京南海府) – 신라 및 한반도 교류 담당

3. 15부(十五府) – 중간 행정 단위

5경을 중심으로 각 지역을 15개의 행정 단위(부)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관리하였다.

15부는 군사·행정을 담당하며, 발해의 지방 통치를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4. 62주(六十二州) – 세부 행정 단위

발해는 62개의 ‘주(州)’를 설정하여, 각 지역에 지방 관리(자사)를 파견하여 직접 통치하였다.

이를 통해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지방까지 확장되었으며, 지방 호족들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5. 지방 통치 체계의 의미

선왕의 행정 개혁은 발해가 단순한 군사적 강국이 아니라, 체계적인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5경 15부 62주의 행정 체계는 이후 고려 시대까지 이어지며,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지방 행정 체제의 모델이 되었다.


‘해동성국(海東盛國)’ – 발해의 전성기

1. ‘해동성국’의 의미

중국 사서(《구당서(舊唐書)》)에서는 선왕 시기의 발해를 ‘해동성국(海東盛國)’, 즉 “바다 동쪽의 강대한 나라”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발해가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정치·군사·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2. 경제적 번영

선왕 시기 발해는 당나라, 신라, 일본과 활발한 교역을 하며 경제적으로 번영하였다.

당나라와의 육상·해상 무역로를 활용하여 비단, 도자기, 약재 등을 수입하고, 말, 모피, 인삼 등을 수출하였다.

일본과도 공식 사절을 교환하며 국제적인 외교·무역 관계를 유지하였다.

3. 문화적 발전

선왕은 불교를 장려하며, 발해의 독자적인 불교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켰다.

상경 용천부와 주요 도시에 불교 사찰을 건립하여, 불교가 발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

고구려의 문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당나라와 신라의 영향을 받아 독창적인 발해 문화가 발전하였다.

4. 군사력 강화

선왕 시기 발해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면서, 주변 세력을 정복하며 강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북방의 거란과 몽골계 부족들을 견제하면서도, 요동과 연해주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발해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 높임.


결론

대인수(선왕)는 발해의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5경 15부 62주의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며 발해를 전성기로 이끈 위대한 군주였다.
그의 치세 동안 발해는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동아시아 강대국으로 성장하며,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정도로 번영하였다.

선왕의 업적은 이후 고려가 고구려와 발해를 계승하는 국가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사적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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