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통일신라+발해+후삼국 스토리

진국(震國) – 발해의 전신과 대조영의 독립 투쟁

전문가팀 2025. 3. 1. 20:22
반응형

진국(震國)은 발해(渤海)의 초기 국호로, 대조영(大祚榮)이 698년 건국한 국가이다. 진국은 고구려 멸망(668년) 이후 흩어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하여 세운 독립국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고 강대국으로 성장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진국은 당나라와 군사적으로 대립하면서도 외교적 유화책을 병행하며 자립을 모색했으며, 이후 713년 ‘발해(渤海)’로 국호를 변경하며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이 글에서는 진국의 탄생 배경, 당나라와의 대립, 대조영의 국가 운영, 발해로의 발전 과정을 분석하여, 진국이 어떻게 발해로 성장하였는지 살펴본다.

 


발해의 전신 – 진국(震國)의 탄생

1. 고구려 멸망과 유민들의 이동

668년, 고구려가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많은 고구려 유민들은 포로가 되거나 각지로 흩어졌다.

일부는 당나라에 강제 이주되었고, 일부는 신라로 망명하였으며, 나머지는 요동과 만주 일대에서 독립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유민 중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大仲象)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하여 요동 지역에서 저항 운동을 전개하였다.

2. 대조영의 등장과 천문령 전투

대중상이 사망한 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당나라의 압박을 피해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당나라의 이진충(李盡忠)이 이끄는 군대가 이를 막으려 했으나, 698년 천문령(天門嶺) 전투에서 대조영이 승리하며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천문령 전투의 승리는 단순한 전투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고구려 유민이 당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3. 진국(震國) 건국

천문령 전투 승리 후, 대조영은 길림성 동모산(東牟山) 지역으로 이동하여 국가를 세우고 국호를 ‘진국(震國)’이라 명명하였다.

‘진(震)’은 ‘고구려의 후계자’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강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로써 진국은 고구려 멸망 이후 최초로 건국된 독립 국가가 되었으며, 이후 발해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당나라와의 대립

1. 당나라의 압박과 진국의 저항

당나라는 고구려 멸망 이후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려 하였고, 이에 따라 요동 지역에 군사 기지를 세우고 고구려 유민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대조영은 이러한 당나라의 정책에 저항하며,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을 유지하였다.

2. 거란·돌궐과의 외교 관계

대조영은 당나라와 대립하면서도, 거란(契丹)과 돌궐(突厥) 등 다른 북방 민족과 외교 관계를 맺어 대립 구도를 형성하였다.

거란과 돌궐은 당시 당나라와 적대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진국과 동맹을 맺어 당나라의 세력을 견제하려 했다.

3. 당나라와의 외교적 전환

당나라는 진국의 군사적 위협과 북방 민족(거란, 돌궐)의 압박을 동시에 받자, 대조영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713년, 당나라는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책봉하며, 진국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조영은 국호를 ‘발해(渤海)’로 변경하고, 공식적으로 국제 사회에서 독립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진국은 당나라와의 군사적 대립을 이어가면서도, 외교적으로는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여 독립을 유지하는 전략을 펼쳤다.


대조영의 국가 운영

1. 고구려 계승 의식

대조영은 국가 운영에서 고구려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계승하였다.

수도(동모산)와 행정 체계, 군사 제도를 고구려식으로 정비하며, 고구려 유민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2. 다민족 국가 운영

진국은 고구려 유민뿐만 아니라, 말갈(靺鞨)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국가였다.

대조영은 말갈 세력을 적극적으로 포용하여, 고구려 중심의 국가가 아니라 말갈과 연합한 새로운 국가 모델을 형성하였다.

3. 경제적 자립과 영토 확장

동모산 지역은 농업과 목축, 무역이 발달한 지역이었으며, 이를 통해 국가 경제를 안정시켰다.

이후 발해로 발전하면서, 송화강 유역과 연해주까지 확장하며 경제적 기반을 더욱 강화하였다.

 

대조영은 단순한 군사 지도자가 아니라,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통합하여 지속 가능한 국가를 운영한 정치적 지도자였다.


진국에서 발해로의 발전

1. 국호 변경 – 진국에서 발해로

713년, 대조영은 국호를 ‘발해(渤海)’로 변경하고,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발해라는 국호는 바다를 기반으로 하는 강대국을 상징하며, 이후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서 중요한 국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2. 동아시아 강국으로 성장

발해는 이후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을 아우르는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당나라, 일본, 신라 등과 외교 관계를 맺으며, 해상 무역을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인정하며, ‘남쪽에는 신라, 북쪽에는 발해가 공존했다’는 의미에서 ‘남북국 시대(南北國時代)’라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진국에서 출발한 발해는 고구려 멸망 이후 단순한 유민 국가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결론

진국(震國)은 고구려 멸망 이후 최초로 등장한 독립 국가로,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하여 건국한 나라였다.
진국은 당나라와 군사적으로 대립하며 독립을 유지하였고, 외교적으로는 거란·돌궐과 손잡아 국제적 입지를 확립하였다.

713년 국호를 발해(渤海)로 변경한 후, 발해는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하였으며, 고구려 계승국으로 자리 잡았다.
진국은 단순한 발해의 전신이 아니라, 고구려 유민들의 독립 의지와 동아시아에서의 새로운 질서를 상징하는 국가였다.

 

 

https://ekqwlckdrh.tistory.com/833

 

대조영과 발해 건국 – 고구려 유민의 부흥과 동아시아의 새 강국

대조영(大祚榮, ?-719년)은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발해(渤海, 698-926년)를 건국한 지도자로, 고구려 멸망 이후 분산된 유민들을 규합하여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그

ekqwlckdrh.tistory.com

 

반응형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