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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926년 요나라(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한 후, 많은 발해 유민들이 고려로 망명했다. 고려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고구려-발해 계승국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정책을 펼쳤다. 특히, 고려는 서경 압록부(西京 鴨綠府, 현재 평양 및 그 인근 지역)를 중심으로 발해 유민들을 정착시키고, 이 지역을 고려의 핵심 행정 거점으로 개편했다.
서경 압록부는 단순한 발해 유민 거주지가 아니라, 고려의 서북 방어의 요충지이자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지역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① 고려 서북 지역의 발해계 유민 정착, ② 서경 압록부의 고려 행정 개편, ③ 발해 유민 정착의 역사적 의미를 중심으로 서경 압록부의 중요성을 살펴보겠다.
고려 서북 지역의 발해계 유민 정착
1. 발해 멸망 후 유민들의 대이동
926년 발해 멸망 후, 많은 발해 유민들이 고려로 이동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 재위 918~943)은 발해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정착지를 마련해 주었다.
발해 귀족 출신 인물들은 고려의 정치·행정 체제에 편입되었고, 일반 유민들은 주로 농경과 상업이 가능한 지역에 정착하였다.
2. 서경(西京)과 압록부(鴨綠府)의 발해 유민 정착
서경 압록부는 발해 유민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지역 중 하나였다.
고려는 발해 유민들을 서경(현재의 평양)과 압록강 유역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국가 방어와 개척을 동시에 진행했다.
발해 유민들은 이곳에서 농업과 무역을 발전시키며 고려의 경제와 국방력 강화에 기여했다.
3. 고려 서북 지역(서경)의 전략적 중요성
서경 지역은 고구려의 옛 수도 평양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려는 이 지역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며 발해 유민들과 함께 요나라(거란)에 대한 방어 기지를 구축했다.
서경은 고려의 북방 개척과 대외 확장을 위한 중심지로 활용되었다.
서경 압록부의 고려 행정 개편
1. 고려의 5도양계 체제와 서경의 역할
고려는 전국을 5도(道)와 양계(兩界)로 나누어 행정 구역을 정비했다.
서경(西京)은 개경(開京, 현재 개성)·동경(東京, 현재 경주)·남경(南京, 현재 서울)과 함께 4경(四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은 고려의 제2 수도 역할을 하며, 발해 유민들이 많이 정착한 지역이었다.
2. 압록부(鴨綠府) 설치와 발해 유민 통합
고려는 발해 유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압록부(鴨綠府)로 편성하여 행정적으로 관리했다.
발해계 주민들은 고려의 행정 체계에 편입되면서 중앙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다.
발해 출신 귀족들은 압록부 및 서경 지역에서 고려의 지방 행정관으로 활동하며, 고려 왕조의 안정을 돕는 역할을 했다.
3. 서경 개발과 고려의 북방 전략
고려는 서경을 군사·행정의 중심지로 육성하며, 대규모 토목 공사를 진행했다.
평양성을 개축하고, 주변 지역을 개간하여 농경지를 확대했다.
고려 문종(文宗) 대에는 서경을 더욱 강화하여 거란과 여진 세력에 대비하는 북방 방어 기지로 활용했다.
발해 유민 정착의 역사적 의미
1. 고려와 발해 유민의 융합
고려는 발해 유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들을 통해 국가 역량을 강화했다.
서경 압록부 지역에서 고려와 발해 유민이 함께 생활하면서 문화적·사회적으로 융합되었다.
발해의 불교·건축·무역 문화가 고려에 흡수되었으며, 발해식 행정 체계도 고려의 일부로 계승되었다.
2. 고려의 북방 개척과 국력 확장
발해 유민들의 정착은 단순한 난민 수용이 아니라, 고려의 국토 확장과 개척 사업과도 연결되었다.
고려는 발해 유민을 활용하여 서북 지역을 개척하고, 국경 방어를 강화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후 고려는 여진족(훗날 금나라)과의 대립 속에서도 이 지역을 활용하여 국방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3. 남북국 시대의 완전한 종결
발해 유민들이 고려 사회에 완전히 융합됨으로써, 남북국 시대(발해와 신라의 공존기)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고려는 발해 유민을 포용하면서도 한반도 중심의 국가 체제를 확립하여 단일 민족 국가로 발전했다.
결론
서경 압록부는 고려가 발해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가 방어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한 중요한 지역이었다.
발해 멸망 후, 발해 유민들은 고려의 서북 지역(서경·압록부)으로 집중적으로 정착했다.
고려는 이 지역을 행정적으로 개편하고, 북방 방어의 중심지로 활용했다.
발해 유민들은 고려 사회에 융합되면서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역사적 정통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서경 압록부는 단순한 발해 유민 거주지가 아니라, 고려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발해와 고려가 융합되는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었다. 이를 통해 고려는 남북국 시대를 종결하고, 한반도 중심의 통합된 국가 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https://ekqwlckdrh.tistory.com/858
발해 유민과 고려의 통합, 남북국 시대의 종결
발해(渤海)가 926년 요나라(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한 이후, 많은 발해 유민들이 고려로 망명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고려가 고구려와 발해를 계승한 국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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