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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발해+후삼국 스토리

후삼국 시대 해상 교역과 고려의 해상 무역 발전

전문가팀 2025. 2. 2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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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시대(후고구려·후백제·신라, 892~936년)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지만, 해상 교역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각국이 경제적 기반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려는 서해를 중심으로 중국(송나라)과의 교역을 확대하였고, 후백제는 남해를 통한 일본과의 무역을 활발히 추진했다. 신라는 쇠퇴하는 과정에서 해상 무역의 중심에서 점차 밀려났으나, 경주를 통한 국제 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후삼국의 해상 무역은 단순한 경제적 활동을 넘어, 군사적·정치적 전략의 일부로 작용하였으며,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해상 무역이 고려 경제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후삼국 시대 해상 무역로, 고려와 송나라의 교류, 후백제와 일본의 무역, 해상 교역의 경제적 중요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후삼국 시대 해상 무역로

후삼국은 각국이 서로 다른 해상 무역로를 활용하여 국제 교류를 진행했다.

1. 고려(후고구려)의 서해 무역

고려는 서해를 통한 중국(당·송)과의 무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주요 항구: 나주(羅州), 군산(群山), 해주(海州), 송악(松嶽, 개경)

주요 수출품: 인삼, 철기, 도자기, 모피, 곡물

주요 수입품: 비단, 서적, 도자기, 차(茶), 약재

고려는 해상 세력을 바탕으로 후백제와의 전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2. 후백제의 남해·동해 무역

후백제는 남해와 동해를 활용하여 일본과의 교역을 강화하였다.

주요 항구: 전주(완산), 목포, 통영, 부산

주요 수출품: 농산물, 철제 무기, 모피, 도자기

주요 수입품: 일본 도자기, 향신료, 금속 공예품

후백제는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었으나, 고려의 해상 봉쇄로 인해 무역로가 점차 약화되었다.

3. 신라의 동해 무역과 쇠퇴

신라는 후삼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잃었으나, 여전히 동해와 남해를 통한 일본 및 당나라와의 무역을 일부 유지하고 있었다.

주요 항구: 울산(蔚山), 경주(慶州), 포항(浦項)

그러나 신라는 군사적·경제적 약화로 인해 후삼국 시대 해상 무역에서 점차 배제되었다.

 

이처럼 후삼국은 각국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해상 교역을 활성화하였으며, 국제 교역을 통해 경제력을 확보하고 정치적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을 펼쳤다.


고려와 송나라 교류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한 후, 송나라(宋, 960년 건국)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적극적인 교역을 진행하였다.

1. 고려-송 무역의 시작

고려는 송나라가 건국된 후, 즉시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고려는 송나라의 고급 물품을 수입하면서도, 송나라에 필요한 물품을 수출하여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2. 주요 무역 품목

고려의 수출품:

인삼, 모피(담비·여우 가죽)

철제 무기, 청자 도자기

금·은·동과 같은 광물 자원

곡물 및 수산물

 

송나라의 수입품:

비단, 도자기(당삼채), 서적(유교 경전, 불경)

향신료(계피, 후추), 약재

불교 사찰 건축 재료(석재, 목재)

3. 해상 무역망의 형성

고려는 송나라뿐만 아니라, 송나라-일본 간의 중계 무역도 담당하면서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중심국가로 자리 잡았다.

고려의 대표적 해상 무역항: 해주(海州), 군산(群山), 나주(羅州)

고려는 해상 무역을 통해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후백제와 일본 교역

후백제는 고려와 경쟁하면서, 일본과의 교역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다지고 국제적 지원을 확보하려 했다.

1. 후백제-일본 교류의 배경

일본은 백제 멸망 이후 백제계 유민들이 다수 정착하면서, 백제 문화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견훤(甄萱)은 이를 이용하여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 무역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다지려 하였다.

2. 후백제의 대일본 무역 품목

후백제의 수출품:

철제 무기, 농기구

도자기, 모피, 목재

곡물 및 농산물

 

일본의 수출품:

금속 공예품(일본 도검 등)

향신료(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것)

고급 비단 및 약재

3. 일본과의 외교 관계

후백제는 고려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일본과의 외교적 협력을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은 후백제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하지 않았으며, 무역을 통해 제한적인 교류만을 유지하였다.

결국, 후백제는 고려와의 경쟁에서 해상 무역로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 점차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해상 교역의 경제적 중요성

후삼국 시대의 해상 교역은 각국의 경제적 안정, 군사력 확보, 외교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 국가 재정 확충

고려와 후백제는 무역을 통해 세금(관세) 수입을 늘리고, 국가 재정을 강화할 수 있었다.

특히, 고려는 해상 무역을 통해 확보한 자원을 바탕으로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는 데 활용하였다.

2. 무역로 확보를 위한 전쟁

고려와 후백제는 무역로를 장악하기 위해 해상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고려는 후백제의 해상 무역을 차단하면서, 후백제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3. 국제 관계 형성

고려는 송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국가로 성장하였다.

후백제는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려 했으나, 고려와의 경쟁에서 패배하며 국제적 입지를 잃었다.

결국, 해상 교역은 후삼국 시대 각국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였으며, 고려가 이를 적극 활용하면서 최종적으로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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