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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스토리

신채호와 백남윤 : 일제시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두 학자

전문가팀 2023. 10. 6.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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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채호

 

신채호(1880년 12월 8일 ~ 1936년 2월 21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 소설가입니다.

신채호는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며, <조선상고사>, <조선혁명선언> 등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신채호는 1880년 충청도 대덕군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역사와 문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905년에는 성균관에 입학하여 근대 학문을 배웠으며, 이후 언론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19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임시정부의 노선에 반대하여 탈퇴하였습니다.

 

신채호는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며, 일제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신채호는 1936년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였습니다.

 

 

신채호는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며, <조선상고사>, <조선혁명선언> 등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신채호의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역사 연구: 신채호는 민족주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조선상고사>를 통해 고구려 중심의 역사관을 제시하였으며, 식민주의 역사관을 비판하였습니다.

 

2. 독립운동: 신채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임시정부의 노선에 반대하여 탈퇴한 후,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며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3. 문학 활동: 신채호는 소설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등을 통해 민족 영웅의 활약을 조명하였습니다.

신채호의 업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과 역사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 백남윤

 

백남운(白南雲)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로,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을 비판하며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등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백남운은 1920년대 중국에서 고조되었던 자본주의 맹아론에 영향을 받아 한국사의 마르크스주의적 5단계 발전론을 설정하고, 한국의 자본주의 맹아에 대한 이론을 내세워 식민사관에 맞섰습니다.

 

1933년 일본 개조사에서 낸 <조선사회경제사>를 통해 일본 학계 내부에서 식민사학의 대표적 이론인 ‘정체성론’의 허구성을 비판했습니다.

 

또한, 백남운은 해방공간에서 북조선으로 넘어가 활동하였으며, 1948년 월북 후 북한의 역사학을 주도하였습니다.

 

 

3. 식민사학과 그 문제점

 

식민사학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학으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대표적인 식민사학의 이론으로는 정체성론, 타율성론, 당파성론 등이 있습니다.

 

정체성론은 한국이 근대화에 실패하여 발전하지 못했다는 이론이며, 타율성론은 한국의 역사가 외부 세력의 영향으로 발전했다는 이론입니다.당파성론은 한국의 민족성이 당파성 때문에 분열되어 있다는 이론입니다.

 

식민사학은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비하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등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4. 민족주의사관과 사회주의사관의 비교

 

신채호와 백남운은 일제강점기 시절 활동한 역사학자로, 서로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채호는 민족주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연구하였으며, 백남운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국의 근대사를 연구하였습니다.

 

신채호의 민족주의 역사관은 한국사의 독자성을 강조하며, 민족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중시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백남운의 사회경제사관은 세계사의 보편성에 따라 한국사가 발전했다고 주장하며,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론을 반박했습니다.

 

 

5. 현대에도 식민사관이 등장하는 이유와 극복 방안

 

오늘날까지도 한국에서 식민사관이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일제강점기 이후 식민사관이 한국의 역사 교육에 깊이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일부 지식인들이 식민사관을 수용하고 이를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넷째, 한국의 역사학계가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 교육의 개선과 함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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