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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는 고구려와 동예 사이에 위치한 부족 사회로, 독특한 생활 방식과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옥저의 고분(무덤) 양식은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특징을 보였으며, 이들의 사회 구조와 장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옥저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로는 돌무지무덤이 있으며, 매장 풍습 또한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옥저의 장례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골장제(骨藏制)’라고 불리는 시체 보관 방식입니다. 이는 시신을 한 번에 묻지 않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유골을 수습하여 저장하는 방식으로, 다른 부족 사회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매장 방식이었습니다. 또한, 옥저의 무덤에는 가족 단위로 시신을 모아두는 방식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이들이 가족 중심의 공동체 문화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옥저의 주요한 고분 양식과 매장 풍습, 그리고 시체 보관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옥저인의 사후관과 가족 중심의 사회 구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돌무지무덤의 특징
옥저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고분 형태는 돌무지무덤(積石塚)입니다. 돌무지무덤은 무덤을 만들 때 돌을 쌓아 올려 봉분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고구려에서도 많이 사용된 무덤 형태입니다.
옥저의 돌무지무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자연석 활용: 옥저 지역은 산악 지형이 많고, 돌이 풍부한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연석을 이용하여 무덤을 조성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큰 돌을 여러 개 쌓아 올리는 형태로, 고구려의 초기 무덤 양식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 단순한 구조: 옥저의 돌무지무덤은 화려한 장식이나 부장품이 많은 형태가 아니라, 비교적 간소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옥저가 귀족 계층이 강한 사회라기보다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 공동 매장: 돌무지무덤은 개인이 아닌 가족 단위로 매장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하나의 무덤에 여러 구의 시신이 함께 묻히는 경우가 흔했으며, 이는 가족 중심의 장례 문화를 보여줍니다.
- 고구려와의 연관성: 옥저는 이후 고구려에 복속되었으며, 고구려의 초기 무덤 양식에서도 돌무지무덤이 많이 발견됩니다. 이는 옥저와 고구려가 문화적으로 교류가 있었으며, 장례 방식에서도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옥저의 매장 풍습
옥저의 매장 풍습은 매우 독특한 형태를 보였습니다. 특히, 일반적인 매장 방식과 차별되는 ‘골장제(骨藏制)’라는 특이한 장례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골장제(骨藏制)란 무엇인가?
골장제는 시신을 바로 매장하지 않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유골을 수습하여 따로 보관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옥저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장례 풍습으로, 일반적인 매장 방식과는 상당히 차별화됩니다.
골장제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 사람이 사망하면, 먼저 임시로 매장하거나 따로 보관해둡니다.
- 일정 기간(수개월~수년)이 지나면, 시신이 부패하여 뼈만 남게 됩니다.
- 가족들은 이 유골을 수습하여 작은 나무상자에 넣거나 특정한 장소에 따로 보관합니다.
- 이후 가족 공동의 무덤이나 특정한 장소에 다시 유골을 모아서 안치합니다.
이러한 골장제 풍습은 단순한 장례 방식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죽은 이의 유골을 따로 보관하고 다시 모아두는 과정을 통해 조상에 대한 존경과 가족 간의 결속력을 높였던 것입니다.
시체 보관 방식
골장제와 함께, 옥저에서는 시체를 일정 기간 따로 보관하는 방식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때 시신을 보관하는 방식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방식이 대표적이었습니다.
- 임시 매장 후 재수습: 일정 기간 동안 시신을 임시로 묻은 후, 나중에 다시 유골을 수습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골장제의 한 과정으로, 최종적으로는 유골을 별도의 공간에 보관하는 형태로 이어졌습니다.
- 나무상자 보관: 일부 지역에서는 시신을 나무상자에 넣어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자에서 유골을 꺼내어 공동의 무덤에 안치하는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 동굴이나 특정 공간 이용: 돌무지무덤 외에도, 동굴이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움푹한 공간을 활용하여 시신을 보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는 지형적 특성을 고려한 방식으로, 이후 고구려의 석실분(石室墳)과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체 보관 방식은 단순히 매장의 개념을 넘어,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문화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옥저의 장례 문화가 주는 의미
옥저의 장례 문화는 단순한 매장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 중심적 사회 구조와 조상 숭배 관념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돌무지무덤을 이용한 가족 공동 매장은 가족 간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방식이었으며, 골장제와 같은 독특한 시체 보관 방식은 조상을 기리는 의식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된 장례 문화였습니다.
이러한 장례 방식은 이후 고구려의 장례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고구려 초기 무덤에서도 옥저의 돌무지무덤과 유사한 형태가 발견되며, 공동 매장 형태도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골장제와 같은 풍습은 후대의 조상 숭배 문화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결국, 옥저의 고분 양식과 매장 풍습은 단순한 장례 절차를 넘어, 그들이 어떤 사회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입니다. 이를 통해 옥저 사회가 가족 중심의 공동체 구조를 유지하면서, 조상에 대한 존경심을 강조하는 문화를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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