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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속 이야기

명궁 거타지 (삼국유사)

전문가팀 2025. 2. 2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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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타지 설화의 역사적 배경

신라 시대의 궁술과 무예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 시대 승려 일연(一然, 1206~1289년)이 집필한 역사서로, 신라의 역사와 설화를 담고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이 책에는 단순한 역사 기록뿐만 아니라, 불교적 색채와 신화적인 요소가 강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명궁 거타지〉는 신라의 뛰어난 궁수였던 거타지(居陀知)의 활솜씨와 용맹함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거타지는 단순한 전사가 아니라, 용맹과 신묘한 궁술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며, 신라 사회에서 활과 무예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였는지를 보여준다.

 

이 설화는 단순한 전쟁 이야기나 영웅담이 아니라, 신라의 군사 문화, 왕과 신하의 관계, 그리고 신이 도와주는 신비한 요소가 결합된 흥미로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글에서는 〈명궁 거타지〉의 줄거리를 정리하고,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교훈을 분석해 보겠다.

 

 

 

거타지 이야기의 줄거리

1. 거타지의 출생과 명궁으로서의 성장

거타지는 신라 시대의 인물로, 어려서부터 남다른 활 솜씨를 보였다.

  • 신라 사회에서는 활과 무술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왕과 귀족들도 무예 수련을 필수적으로 익혀야 했다.
  • 거타지는 신분이 낮은 계층 출신이었으나,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최고의 궁수가 되었다.
  • 그는 신라에서 명궁(名弓)으로 불릴 정도로 활을 잘 쏘았으며, 왕과 귀족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2. 신라 왕의 명령을 받다

어느 날, 신라 왕은 거타지의 활 솜씨를 시험하고자 그를 불러들였다.

  • 왕은 거타지에게 "과연 네가 명궁이라 불릴 만한 실력을 갖추었는가?"라며 그를 시험하려 했다.
  • 거타지는 "저의 활 솜씨를 시험해 보시려면 아무 과녁이나 주십시오. 반드시 맞히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 왕은 그의 자신감을 보고, 특별한 임무를 맡길 계획을 세웠다.

3. 이무기를 퇴치하는 임무를 받다

신라 왕은 거타지에게 한 마을을 괴롭히는 이무기(異物, 용이 되지 못한 괴물)를 퇴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 이무기는 강가에 살면서 사람들을 잡아가거나 가축을 해치는 괴물이었다.
  •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며, 왕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거타지를 보냈다.
  • 거타지는 "이무기를 퇴치하겠으니, 저를 믿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출정을 준비했다.

4. 이무기와의 대결

거타지는 이무기가 나타나는 장소를 찾아가 숨어 있다가, 이무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활을 들어 조준했다.

  • 이무기는 커다란 몸집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보통 사람들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 거타지는 숨을 고르고 한 발의 화살을 정확히 쏘아 이무기의 급소를 명중시켰다.
  • 이무기는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강물 속으로 가라앉아 죽었다.
  • 마을 사람들은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거타지를 칭송했다.

5. 왕의 보상과 신비한 이야기

거타지는 이무기를 퇴치한 공로로 신라 왕에게 불려가 상을 받게 되었다.

  • 왕은 그의 용맹과 활 솜씨를 칭찬하며, 귀한 보물과 벼슬을 내렸다.
  • 그러나 거타지는 "저는 명예나 재물을 탐하지 않습니다. 오직 신라를 위해 제 활을 사용할 뿐입니다."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 이후 거타지는 신라의 궁술 스승으로 활동하며 후배들을 양성하였으며, 신라의 명궁으로 전해졌다.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

1. 신라의 군사 문화와 궁술의 중요성

신라는 삼국 중에서도 활을 중요하게 여긴 나라였다.

  • 신라의 병사들은 활을 기본 무기로 사용했으며, 궁술 대회가 자주 열릴 정도로 활 솜씨가 중시되었다.
  • 거타지는 뛰어난 궁사(弓士)로서 왕의 신임을 얻었으며, 이는 무예가 신라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 활을 잘 쏘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신라 시대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2. 이무기 퇴치와 신라의 신앙관

이무기는 신라 설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괴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깨뜨리는 존재로 해석된다.

  • 신라 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으나, 여전히 토착 신앙과 용(龍)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남아 있었다.
  • 이무기는 용이 되지 못한 존재로, 신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의 상징이었다.
  • 거타지가 이무기를 퇴치했다는 것은 신라의 질서를 바로잡고, 왕의 권위를 높이는 중요한 상징적 행위로 볼 수 있다.

3. 신하의 충성과 왕의 인정

거타지는 왕의 명령을 받아 이무기를 처치했으며, 이는 왕권 강화와 충성의 미덕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 신라 사회에서는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신하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 왕은 이를 보상해 주었으며, 이는 신라 사회에서 충성과 보상의 원칙이 잘 정착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거타지 설화와 유사한 이야기

1. 고려 시대의 "최영 장군과 왜구 토벌"

고려 시대의 명장 최영(崔瑩) 역시 거타지처럼 뛰어난 무예와 충성심으로 왕의 신임을 받았다.

  • 최영은 왜구를 무찌르고 고려를 수호한 장군으로, 거타지처럼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적 인물이었다.
  • 두 이야기 모두 왕에게 충성하는 무장이 국가를 구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2. 중국의 "후예(后羿)와 해를 쏜 이야기"

중국 신화에서 활의 명수인 후예(后羿)가 하늘의 열 개의 해 중 아홉 개를 쏘아 없애는 이야기가 있다.

  • 후예는 강력한 활솜씨로 혼란을 바로잡는 영웅적인 존재였다.
  • 거타지도 신라 사회에서 무질서를 바로잡는 영웅적인 궁수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결론

〈명궁 거타지〉 설화는 단순한 무용담이 아니라, 신라 시대의 군사 문화, 왕과 신하의 관계, 그리고 신비한 요소가 결합된 이야기다.

  • 활 솜씨가 뛰어난 인물은 신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 이무기 퇴치는 단순한 괴물 퇴치가 아니라, 신라의 질서를 바로잡는 상징적 행위였다.
  • 신라 사회에서 왕과 신하의 관계, 충성과 보상의 원칙이 중요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결국, 거타지는 신라의 이상적인 무장으로, 백성을 지키고 왕을 섬기는 충성스러운 영웅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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