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자호란(1636~1637년) 당시, 조선은 청나라(후금)와 맞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화의를 맺고 전쟁을 피할 것인지를 두고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었습니다.이때 최명길을 중심으로 한 주화파(主和派)는 전쟁보다 화친이 조선의 생존을 보장할 길이라고 주장했습니다.반면, 김상헌을 중심으로 한 척화파(斥和派)는 끝까지 청나라와 싸워야 한다고 맞섰습니다.결국 청나라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서 조선은 주화론을 선택하게 되었고,1637년 삼전도의 굴욕을 통해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최명길이 주장한 주전론(主戰論)의 의미, 전개 과정, 그리고 조선 내부의 갈등과 역사적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청과의 화의 주장: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논리1. 조선의 국제 정세와 최명길의 판단17세기 초, ..
한국조선전기스토리
2025. 2. 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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